-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무튼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입니다. 이건 ‘이를테면’을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입니다. 하나의 개인적인 테마가 있다고 합시다. 소설가는 그것을 다른 문맥으로 치환합니다. ‘그건요, 이를테면 이러저러한 것이에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치환 속에 불명료한 점,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그것에 대해 ‘그건요, 이를테면 이러저러한 것이에요’가 끝도 없이 줄줄 이어집니다. 23p
-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 라는 것입니다. 24p
- 어느 시점에 ‘날카로운 면도칼’을 ‘잘 갈린 손도끼’로 전환하는 게 요구됩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잘 갈린 손도끼’를 ‘잘 갈린 도끼’로 전환하는 게 요구됩니다. 그 같은 몇 가지 전환 포인트를 제대로 뛰어넘은 사람은 작가로서 한 단계 거물급이 되고, 아마도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것입니다. 27p
- 그도 그럴 것이 상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 아카데미상에서 노벨 문학상에 이르기까지, 평가 기준이 수치로 한정된 특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가치의 객관적 뒷받침 같은 건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비를 걸자면 얼마든지 걸 수 있어요.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하자면 얼마든지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71p
- 요즘 책에 무관심하다, 활자에 무관심하다, 라는 얘기가 자주 들리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5퍼센트 전후의 사람들은 설령 ‘책을 읽지 마라’고 위에서 강제로 막는 일이 있더라도 아마 어떤 형태로든 계속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 사람들이 스무 명에 한 명이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책이나 소설의 미래에 대해 내가 심각하게 염려할 일은 없습니다.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염려하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입니다. 77p
-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격’이라는 점입니다. 상은 어디까지나 그 자격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작가가 행해온 작업의 성과도 아니고 보상도 아닙니다. 하물며 결론 같은 것도 아니에요. 어떤 상이 그 자격을 어떤 형태로든 보강해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 작가에게는 ‘좋은 상’이라는 얘기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혹은 도리어 방해물이 되고 성가심의 원인이 된다면, 그것은 유감스럽지만 ‘좋은 상’이라고 할 수 없다, 라는 얘기입니다. 83p
- 오리지낼리티는 많은 경우, 허용과 익숙해짐에 의해 당초의 충격력을 상실하는데 그 대신 그런 작품은-만일 내용이 뛰어나고 행운이 따라준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고전’으로 격상됩니다. (…) 그것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들의 그림이 오리지낼리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각이 그 오리지낼리티에 동화하고 그것을 ‘레퍼런스’로서 자연스럽게 체내에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91p, 94p
-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하고,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하며, 3.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97p
-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100p
-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105p
-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이란 기억이다’라고 실로 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을 말합니다.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좀 모순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 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125p
- 한정된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도 거기에는 무한한-혹은 무한에 가까운-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건반이 여든여덟 개밖에 없어서 피아노로는 더 이상 새로운 건 나올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겠지요. 133p
-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 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7p
- 하지만 그런 ‘제삼자 도입’ 과정에서 내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수긍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씁니다. 지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의 조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치기도 합니다. (…)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157p
- 하지만 그 작품을 써낸 시점에는 틀림없이 그보다 더 잘 쓰는 건 나로서는 못 했을 것이다, 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시점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쏟아붓고 싶은 만큼 긴 시간을 쏟아부었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자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총력전’을 온 힘을 다해 치른 것입니다. 그러한 ‘모조리 쏟아부었다’는 실감이 지금도 내게 남아 있습니다. 165p
- 그래서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작업에도 양생에도 진득하게 시간을 들였고, 망치질에도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는.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167p
-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167p
- 나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 라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을 쓴 시점에는 내가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단지 그것뿐입니다. 유감스럽기는 해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부족한 역량은 나중에 노력해서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잃은 기회를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70p
- 협소한 목적의식이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특화된 채 점점 커져버려서 세계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선을 상실했습니다. 221p
- 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사회 기반에 뭔가 큰 동요(혹은 변용)가 일어난 뒤에 내 책이 널리 읽히는 경향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 가치관이 급격히 교체되는 상황에서 내가 제공한 스토리가 갑작스럽게 새롭고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사회 기반, 구조의 급격한 변동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품고 있던 리얼리티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개변을 요구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현실 사회의 리얼리티와 스토리의 리얼리티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혹은 무의식 속에서) 피할 수 없이 그 근저에서 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에도 대변혁이 일어나 사회의 리얼리티가 크게 교체될 때, 그것은 스토리의 리얼리티의 교체를, 마치 반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요구합니다.
스토리란 본래 현실에 대한 메타포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은 변동하는 주변 현실의 시스템을 따라잡기 위해, 혹은 거기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내적인 장소에 앉혀야 할 새로운 스토리=새로운 메타포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그 두 가지 시스템(현실 사회의 시스템과 메타포 시스템)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에 의해, 다시 말해 주관 세계와 객관 세계를 오고 가면서 상호 간에 제대로 적응하도록 하는 것에 의해, 사람들은 불확실한 현실을 겨우겨우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유지해나갈 수 있습니다. 303~3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