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정적으로 가장 확실한 정보는 여전히 대부분 웹에 공유되지 않는다. 인터넷상에서 공짜로 습득할 수 있는 정보는 뇌파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뇌파는 뇌의 활동을 보여 주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 주지는 못한다. 소비 정보나 관련 뉴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은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 뭔가를 유추할 수 있다는 신호다. 동시에 100퍼센트 신뢰할 만큼 해상도 높은 정보가 아니다.
- 아이스크림이든 볼펜이든 후디든 모든 제조업 결과물은 사정이 있다. 모든 물건에는 각자의 한계가 있다. (…) 모든 제조업 결과물은 각자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의 노력과 연구와 최적화를 거친 결과물이다. (…) 그 모든 사정과 그 사정 사이에서의 최선을 존중하려 했다.
-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며 그 모두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겨울에 입는 니트 하나에도 국제 정세가 얽혀 있다. 집 앞에서 파는 볼펜에도 글로벌 산업의 고민과 한계가 들어 있다. 이른바 어른이 되는 건 그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며 그 일부가 되는 것이다. (…) 세상의 복잡함을 이해하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거나 알아보기만 해도 복잡한 세상이 반 페이지쯤 열린다.
- “후드를 쓰지 않았을 때 후드가 서 있는지 봅니다.” 패션 브랜드에서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하던 A군의 대답이다. (…) 아울러 A군은 후드와 함께 리브rib를 본다고도 했다. (…) A군의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건 품질을 보는 눈이다. (…) 후드 말고도 세상의 많은 물건에 자신의 기준을 정해 보면 세상을 보는 방법도 달라진다. 그 기준이 절대적으로 맞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지가 중요하다. (…) A군의 기준은 자신의 체형을 최우선 상수로 둔 도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러니 A군 자신에게 합당하다. 이렇듯 스스로를 위한 기준을 정하면 삶의 여러 선택이 간편하고 견고해진다. 옷을 고를 때도, 그 상황을 넘어서도.
- 물건에 혹하기 전 나 자신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는 게 좋다. 백팩을 포함해 모든 물건을 고를 때 말씀드리고픈 기준이다.
-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초저가 볼펜에서도 단가 관리의 예술을 읽을 수 있다. 2백 원짜리 볼펜이 있다면 3백 원짜리 볼펜에 비해 어딘가에서 단가를 낮추되 최소한의 품질을 충족시켰다는 의미다. 2백 원짜리 볼펜은 2천 원짜리 볼펜보다 10배 나쁜가? 어느 부분을 생략하고 어떤 부분의 디테일을 희생시키면 제품 가격이 차이가 나는가? 이런 식으로 관찰하다 보면 세상에 나쁜 물건은 없고 각자의 상황에 맞는 물건만 있을 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 가격이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은 걸 원한다면 크게 두 가지 조건을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된다. 하나는 간단한 기능, 하나는 오래된 브랜드다.
- 주요 소비재의 대표 브랜드를 생활 상식처럼 알아 두면 사소한 일상생활에 도움이 된다. 특히 다양한 외국에 자주 나갈 거라면.
- 내 삶의 모양이나 기호가 뭐가 중요하냐 싶을 수도 있고, 그건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호 없는 삶을 살다 보면 종종 스스로의 삶이 투명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중의 허무를 피하기 위해 지금 틈틈이 과하지 않은 정도의 기호를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호가 과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허무하다.
- 공장제 대량생산도 매번 똑같은 색을 낼 수는 없다. 자연과 인간이라는 변수가 적용되는 일이니까. 같은 브랜드의 같은 색 니트를 2년 연속 사서 비교해 본다면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여기서 색이 달라지는 건 에러가 아닌 자연의 섭리다. 자신과 남에게 엄격한 것도 좋지만 그런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혼자 깐깐하고 예민한 양 구는 사람들이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우습고 피곤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다.
- 세상 모든 물건엔 제값이 있고 대부분 가격과 가치가 비례한다. 반면 잘 만든 안경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유행이 지난 걸 찾으면 된다.
- 시간은 모든 싸구려를 무너뜨린다. 소재도 디자인도 사상도. 튼튼한 소재는 시간에 무너지지 않는다. 좋은 데님처럼. 동시에 공들인 삶은 어떻게든 멋진 흔적을 남긴다. 당신의 오래된 청바지처럼.
- 의자는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튼튼한 경우가 많다. 의자도 사상도, 상당히 별로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라도 일단 집에 들여오면 내보내기가 힘들어진다. 살면서 그런 경험을 몇 번 했다. 그런 게 쌓이며 전체적인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의자 하나라도 아무렇게나 가져와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 사양을 적당히 조절해 가격을 낮추는 것 역시 대단한 노하우이며 의사 결정이다. 대량 생산품은 모든 요소가 극도로 최적화된 결과물이다. 흔히 사람들은 대량 생산품에는 영혼이 없고 장인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것에 영혼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나이브한 가설이다. 대량 생산품에도 엄연히 영혼이 있다.
- 좋은 물건의 조건을 생각하는 건 그 자체로 입체적인 정보 수집과 사고와 분석 훈련이 된다. (…) 가격은 물건의 가치에 매겨진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가격 하나만을 두고 전체의 가치를 판단하는 건 간단한 판별법이겠지만 입체적인 판별법은 아니다.
- 나는 이른바 현명한 소비 생활이란 스스로 소비와 물건에 대한 문답을 지속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둘러싼 복잡한 질문 사이에서 답을 내야 하는 사람은, 아울러 물건 사이에서 이런 질문을 만들어 나름의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이다. 그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산다면 평생 각종 마케팅용 신화와 마케팅 이벤트에 파묻힌 채, 자신이 파묻혀 있는 줄도 모르고 소비자본주의의 부품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미 그렇게 체제의 잠재 부품으로 살아가고 있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