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 이 차이는 사용하는 식기의 재료 때문에 발생했다. 빅토리아시대에 품질이 떨어지는 찻잔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재료는 뜨거운 차를 부으면 금이 가는 일이 잦았다. 우유를 먼저 부어야 찻잔이 망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돈 많은 사람들은 뜨거운 차를 곧바로 부어도 되는 고급 자기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우유를 나중에 넣는 것은 높은 경제적 지위를 보여주는 표지가 되었다.1 우유와 차의 순서는 실용적인 문제였지만 취향보다는 계급이 드러났다. 어쨌든 고급 자기를 가진 이들은 이런 사치를 보여주기 위해 우유를 나중에 넣곤 했다. (…) 현대에 접어들어 거의 모든 식기가 뜨거운 차를 바로 부어도 끄떡없을 만큼 품질이 좋아졌는데도 우유를 먼저 붓는 것은 여전히 사회적 계급의 표지로 남았다.
  • 오랜 세월에 걸쳐 겉으로는 실용적인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이 지위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손에 넣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종종 우리의 지위를 세상에 보여준다. 여기에는 분명하게 비싼 물건들이 있다—잘사는 동네의 저택, 스포츠카, 고급 자기, 고가 시계 등이다. 매너 또한 가정교육과 일정한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이메일 대신 짧은 손편지를 쓰는 것, 식사를 마치고 숟가락과 포크를 내려놓는 방식, 사랑하는 이에게 꽃다발을 보내는 것 등등. 이런 행동들은 거의 모두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며, 가시적인 재화 및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의존한다.
  • 더글러스가 《재화들의 세계The World of Goods》에서 말한 것처럼, “재화는 하드웨어인 동시에 소프트웨어, 즉 하나의 정보체계다. …… 신체적 욕구를 관장하는 재화—식품과 음료—는 발레나 시 못지않은 의미의 매개체다”.
  • 《유한계급론》은 사회 상층계급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람들이 돈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출한다는 생각의 기반을 이루는 정통파 경제이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베블런은 우리가 어떻게 돈을 쓰는지에 관한 전통적 통념에 맞서면서 모방과 흉내가 소비 습관의 동기이며, 이러한 소비 습관의 대부분은 비합리적이고 낭비적이라고 주장했다. (…)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쓰고 한 세기 뒤, 기술의 대대적인 변화와 세계화는 우리가 일하고 생활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발전은 중간계급[이 책 전체에서 저자는 ‘중간계급’을 중위 소득집단의 의미로 사용한다.—옮긴이]을 창출하고 물질적 재화의 비용을 낮추어 과시적 소비가 보편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 하지만 계급 간 격차는 사람들이 가진 물건만으로 간단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노동과 여가의 관계, 소비 방식, 소비가 지위와 연결되는 방식 등을 뒤바꾸고 있다. 대니얼 부어스틴Daniel Boorstin의 말을 인용하자면, 언뜻 “사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듯 보이는 21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겪고 있으며 엘리트층과 그 밖의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 거의 모든 것(아마 버버리의 워리어 가방 정도만 예외일 것이다)을 복제하거나 싼값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엘리트집단의 지위 게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2008년 대불황 이후에도 의문의 여지 없이 부유층은 줄곧 더 부유해지고 있으며, 그들은 이런 부를 바탕으로 모방이 불가능한 물건을 사들인다.
  • 조너선 거슈니Jonathan Gershuny는 저서 《변화하는 시대: 탈산업 사회의 노동과 여가Changing Times: Work and Leisure in Postindustrial Society》에서 베블런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 최상층 사회경제 집단은 시간이 더 많은 게 아니라 부족하며, 노동과 여가라는 두 변수가 ‘반비례관계’—시간은 생산, 즉 새로운 형태의 고부가가치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영향을 받는다—를 갖는다고 말했다. 오늘날 풍요로운 여가시간은 더 이상 높은 지위를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 20세기 중반의 사회적·경제적 이동성은 조직에 대한 개인의 충성도와 상당한 관련이 있었다. 이 시대에 조직에 대한 충성(가령 포드모터스컴퍼니나 제너럴일렉트릭에서 40년간 일하는 것)은 중간계급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뒷받침하는 지속적 승진, 임금 인상, 기타 보상과 연결되었다. (…) 조직에 대한 노동자들의 충성심은 개인의 생각과 포부보다 우선시되었지만, 밀스의 주장처럼 이는 보상을 받았고 지속적인 성장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아주었다. (…) 그러나 제조업 경제가 붕괴하면서 사회적·경제적 이동성의 흐름은 상당히 바뀌었다. 서구 각국(특히 미국과 영국) 경제의 탈산업화는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요인으로 설명된다. 시장의 과포화 상태(한 가구가 살 수 있는 식기세척기가 너무도 많다), 기술과 자동화(공장 라인에서 기계는 사람보다 저렴하고 빠르다), 세계화(다른 나라의 인건비가 더 저렴하고, 컴퓨터와 나란히 운송 기술이 발전해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로 생산을 아웃소싱할 수 있다). 그 결과, 미국인들의 안락한 삶을 가능하게 했던 고임금 공장 일자리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 이런 공장 일자리들이 개발도상국으로 옮겨가고 미국 공장이 문을 닫자 안정적이었던 중간계급은 결국 생존수단을 잃어버렸다. 탈산업화는 주요 거점 도시(많은 공장이 자리한 도시)를 잠식하면서 나라 곳곳에서 실업을 야기했다. (…) 제조업이 사라지자 서비스 경제가 부상했고, 경제구조는 뚜렷하게 양극화되었다. (…) 글로벌 경제가 제품 생산에서 아이디어 생산으로 이동한 결과, 이런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사람들, 즉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말한 ‘상징 분석가들symbolic analysts’29이나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이름 붙인 ‘창조 계급creative class’이 신경제의 승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 새로운 집단은 소득수준이 아니라 문화적 관습과 사회규범으로 하나로 묶인다. 이 새로운 엘리트 문화집단의 성원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소득수준보다는 지식 습득과 가치관에 있다. 이들은 더 높은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의식을 얻기 위해 지식을 활용한다. 사회적 지위는 지식을 습득하고 계속해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집단은 비슷한 지식을 습득하고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며, 이 모든 것을 통해 자신들의 집단적 의식을 구현한다. 문화평론 읽기, 최신 뉴스 따라잡기(특히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유기농 식품 섭취 등은 그들이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서로 연결되는 다양한 방법 중 몇 가지다. 이런 노력의 이면에는 선의의 목표가 존재한다. 지식과 문화자본은 무엇을 먹을지, 환경을 어떻게 대할지, 어떻게 더 좋은 부모, 더 생산적인 노동자, 더 식견 있는 소비자가 될 수 있을지 등에 관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된다. (…) 이들의 상징적 지위는 간혹 물질적 재화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지식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문화적 기표들—디너파티에서 신문 칼럼을 놓고 나누는 대화, 정치적 견해와 그린피스 지지를 나타내는 범퍼 스티커, 농민 직거래 시장에서 장보기 등—을 통해 드러난다. 이런 행동과 기표들은 야망계급의 가치관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런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 또한 넌지시 드러내준다. 오늘날의 야망계급은 커리어에서부터 식품점에서 구입하는 식빵 종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선택을 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데서 가치관과 문화적·사회적 의식, 지식 습득을 소중히 여긴다. 이들은 크고 작은 온갖 선택을 할 때마다 자신이 사실에 근거해(유기농 식품, 모유 수유, 전기차 등의 장점에 관해) 올바르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결정이 식견 있는 것이며 정당하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 야망계급은 특정한 가치관과 지식 습득에 기반한 집단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을 얻는 데 필요한 희소한 사회적·문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 야망계급은 스스로 확신하는 가치에 따라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하고 견해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폭넓은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활 방식을 능동적으로 선택한다. 이 과정 가운데 일부에는 돈도 필요하지만 대개 돈보다는 문화자본에 의지한다. (…) 야망계급의 소비는 그 성원들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표지로 기능한다. 물론 이 새로운 엘리트 문화집단 내부에는 경제적 격차가 존재한다. (…) 요컨대 이 새로운 문화적·사회적 집단은 성원에게 요구되는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표시 때문에 엘리트이지만, 궁극적으로 야망계급의 성원들은 경제적 지위는 부차적인 것으로 둔 채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그들 나름대로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야망한다. (…) 야망계급의 사회규범과 사회적 재화는 그들의 소비 실천의 밑바탕을 이루는 암묵적 지식과 지식의 습득을 반영한다. 야망계급의 모성 실천은 단지 돈이 아니라 3세 이하 아이를 먹이고 달래고 가르치는 완벽한 방법에 대한 광범위한 학습을 의미한다. 이런 지식은 물질적 재화와 실천으로 기표화되며 이는 다시 이 희귀한 집단의 성원임을 드러낸다.
  • 1800년대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지위를 드러내려는 욕망 역시 현재의 경제적·사회적 세계 질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 야망계급에게는 유한(여가)도 대부분 생산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 《이코노미스트》를 보거나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를 듣거나 요가 강습을 받는 등 야망계급의 여가는 마치 노동처럼 지식과 생산성으로 가득 차 있다.
  • 2014년, 부유층은 총지출의 17퍼센트를 과시적 소비에 쓴 반면, 중간계급은 18.1퍼센트를 썼다. 과시적 소비의 지출 비중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돈이 많을수록 과시적 소비의 기회도 더 많아지긴 하지만, 소득이 적다고 해서 가시적, 물질적 재화를 소비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 오늘날 많은 과시적 재화는 모든 소득집단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부유층은 많은 사람이 손에 넣을 수 있고 중간계급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재화를 통해 스스로를 구별하지 않는다(중간계급은 재정계획과 신용거래를 통해서만 살 수 있긴 하지만).
  • 1996년 이래, 저소득 가구는 일관되게 총지출에서 장례식에 가장 많은 돈을 썼고, 부유층은 같은 기간 국민 평균보다 덜 썼다. (…) 존슨은 에드워드시대와 빅토리아시대 잉글랜드에서 노동계급 사이에 지위를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 장례식이었던 반면, 부르주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 《최후의 거대한 필수품: 미국사의 묘지들The Last Great Necessity: Cemeteries in American History》을 쓴 도시사학자 데이비드 슬론David Sloane이 설명한 것처럼, “노동계급 가정에게 죽음, 특히 어린아이나 가장의 죽음은 전통적으로 막대한 파급력을 지닌다. 또한 저소득층 지역사회는 대개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고 생존을 위해 그런 사회적 자본에 의지한다. 대다수 가정은 장례식의 공동체적 측면—아일랜드의 경야經夜 같은—뿐만 아니라 수행적 측면—존중을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비용—에도 상당한 액수의 돈을 쓴다”. 슬론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또한 부유층 가정은 …… 죽음과 망자, 장례식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인다. …… 많은 이가 죽음을 매우 사적으로 간직하며, 따라서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 차별을 겪은 역사를 지닌 소수자들에게 과시적 소비는 사회적·경제적 위치를 효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차별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결과는 상층계급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 WASP 문화에서 관찰되는 것과 거의 정반대다. 어떤 차별이나 억압도 경험하지 않은 와스프집단은 물질적 재화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다. 피부색만으로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우리의 연구는 교육, 인종, 연령, 지리, 도시 규모, 가구원 수, 주택 소유 여부, 결혼 여부, 소득탄력성 등의 상호작용을 고려한다. 따라서 각각의 경우에 우리는 특정한 변수(가령 교육)를 따로 떼어놓고 그것이 지출에 미치는 개별적 효과를 연구했다.
  • 나는 부유층에서 나타난 새로운 추세를 강조했다. 비과시적 소비의 부상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문화적으로 드러내려는 소비가 아니라 정원사나 돌보미, 자동차 관리사를 고용하거나 교육과 퇴직연금에 지출을 집중하는 식으로 계급적 위치를 드러내는 소비다. 이 재화들 가운데 어느 것도 물질적이거나 지위를 드러내는 데 사용되지 않으며, 이러한 재화의 소비는 다만 지출을 감당할 여력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부를 보여준다.
  • 학사학위나 석사학위 또는 그 이상(의학박사, 법학박사, 철학박사 등)을 가진 사람들은 과시적 소비에 고등학교 중퇴자보다 35퍼센트,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약 20퍼센트, 전문대학 졸업자보다 5퍼센트를 더 지출한다. 이 분석은 소득을 통제했기 때문에 교육이 이런 지출에 필요한 소득을 제공한다고 단순하게 볼 수 없다. 그보다는 헤페츠가 말한 것처럼, 특정한 교육적 배경을 갖춘 이들이 과시적 소비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환경에 속하며, 교육이 ‘항구적 소득’, 즉 평생 동안 계속해서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소득의 적절한 척도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어째서 자동차나 주택, 새 시계에 더 많은 돈을 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