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다못한 라마파 온두 블리코롤롱이 끝내 호통을 쳤다. “누로 메날루프(배고픈 숟갈)!” 구어체로 말하면 ‘배고플 때 숟갈질을 하듯 노를 저어라!’, 가장 정확히 말하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싶으면 노를 빨리 저어라!’라는 뜻이었다.
  • 라말레라 부족은 오늘날 명맥을 이어가는 수렵채집사회 중에서 ‘가장 작고, 갈수록 점점 위축되는 집단’이며 고래 사냥으로 연명하는 유일한 부족이다. (…) 300명에 달하는 부족의 사냥꾼들은 1년에 평균 스무 마리의 향유고래를 잡아, 총 1,500명의 부족원에게 육포를 공급함으로써 궁핍한 계절풍 시즌-폭풍 때문에 배를 띄우기 어려운 시기-을 견뎌내게 한다.
  • 라말레라 부족이야말로 진정한 ‘최후의 생계형 고래잡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국제포경규제협약 조인국이 아니지만, 설사 조인국이더라도 그 협약은 라말레라 부족의 고래 사냥과 비슷한 애버리지니(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생계형 사냥’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수십만 마리의 야생 향유고래가 바다에서 뛰놀고 있음을 감안할 때, 라말레라 부족이 향유고래의 글로벌 개체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 라말레라 부족은 최근 20년 동안 거침없이 밀고 들어온 (지구촌의 가장 외떨어진 구석까지도 바꿔버리는) 정보, 상품, 기술의 거센 압박에 시달려왔다. 오늘날 라말레라 부족은 (현대적인 삶을 추구하느라 고래 사냥을 포기한) 청년, (해양 동물의 씨를 말리는) 기업형 저인망 어선, (원주민의 생활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업가와 외국의 활동가, (현대화로 인한 진퇴양난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둘러싼) 내부 갈등의 위협에 둘러싸여 있다. (…) 이런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라말레라 부족뿐만이 아니다. 일찍이 16세기에 유럽인이 다른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한 이후 가속화한 문화 소멸의 파도가 전 세계 문화의 수를 절반으로 줄여, 20세기에만 수천 개의 문화가 사라졌고 향후 수십 년간 수천 개의 문화가 더 멸종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이 신속히 줄어드는 동안 모든 사람은-산업사회에 속해 있든 전통사회에 속해 있든-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현재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본모습이 뭘까?’ ‘우리의 현재 모습은 무엇일까?’ ‘나중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 고래의 회색 가죽에 새겨진 흔적에서, 그는 여느 향유고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승전사를 읽었다. 주둥이를 가로질러 타원형을 그린 ‘O’ 자의 행렬! 그것은 수심 1,600미터 지점에서 게걸스레 먹어치운 대왕오징어의 빨판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 라말레라 부족의 남자가 라마파의 지위에 오르려면 테나의 선장에게 불려가 작살을 휘두를 기회를 얻어야 했다. 테나가 바다에 나갈 때마다 욘은 선장이 자기를 불러주길 내심 바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다림이 헛되었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뭐든 찌를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않는 한, 그의 능력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기회가 주어져야 뭐라도 찔러볼 것 아닌가! 기회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능력을 연마한단 말인가? 그는 역설적 상황에 좌절했다.
  • 나이든 고래잡이들 중 상당수는 모터보트를 불신한 나머지, ‘테나만 코테켈레마를 사냥할 수 있다’는 규칙을 강화했지만 존손의 효율성은 진보적인 고래잡이들을 신속히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 욘이 맨 처음 테나 대신 존손에서 훈련을 받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가 열두 살이던 2004년, 라말레라 선단에 스물한 번째 존손이 추가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존손이 대여섯 척밖에 없었음을 감안할 때,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이제는 테나가 열네 척으로 줄어들어(많은 청년들이 모터보트를 선호하다 보니, 정원을 채우기가 어려워져 테나를 처분하는 가문이 속출했다) 존손의 수가 테나의 수를 추월하게 되었다. 고지식한 구세대는 매일 새벽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펠라나가 첫 번째 만타가오리를 잡아 올릴 때 테나는 아직도 연안류에서 벗어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엔진으로 무장한 라말레라 부족의 청년들은 노 젓는 수고 없이 먼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연장자들은 ‘기계 때문에 전통적 지식(그렇잖아도 사라져가고 있는 고래 사냥 노래와 항해술)이 자취를 감출지 모른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선외 모터가 선원과 부족의 단결심을 약화시킬까봐 걱정했다.
  • 어떤 연장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존손 때문에 부족원들에게 돌아가는 고기의 양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모터보트는 (테나에서 잡아 모든 부족원을 몇 달 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거대한 범고래나 향유고래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인류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테나에서 공동 작업으로 고래를 잡았던 라말레라 사람들’이 ‘삼판이나 존손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잡았던 사람들’보다 장기적으로 더 많은 칼로리를 획득할 수 있었다. (…) 어쨌거나 청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단기적인 성과였기 때문에 연장자들조차도 ‘설사 잔챙이일망정 존손에서는 공치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테나는 가문의 공동재산이기 때문에 테나에서 잡은 동물을 모든 구성원에게 골고루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존손은 대개 소규모 집단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선원들에게 더 많은 고기를 배분할 수 있었는데, 이 점이야말로 젊은 사냥꾼들을 사로잡았다.
  • 해가 지날수록 이른 새벽 해변에 모여 테나를 띄우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2000년에는 매일 아침 약 스무 척의 테나가 출항했지만 10년이 지날 때쯤엔 겨우 몇 척만 바다로 나갔고 존손이 그들을 스치며 달려 나갔다. 조상님들께 바람이나 사냥감을 달라고 기원하던 ‘마테로스(테나의 노잡이)의 노래’는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모터의 부르릉 소리가 바다에 메아리쳤다. 테나가 향유고래를 쫓기 위해 돛을 펼쳤을 때, 돛을 구성하는 야자 잎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 욘을 비롯한 라말레라 사람들은 이러한 까다로운 선택에 일상적으로 직면한다. 고래잡이로 일할 것인가, 아니면 공사장 인부로 일할 것인가. 물물교환 경제에 참가할 것인가, 아니면 화폐경제에 참가할 것인가.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TV에 나오는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그들의 선택과 다른 원주민의 선택이 어우러질 때 궁극적으로 인류의 다양한 정체성이 유지될 것이다. 만약 모든 문화가 희석되어 하나의 산업사회적 단일 문화가 된다면 인류는 궁극적으로 다양성을 상실하고 동질적인 무리가 될지도 모른다.
  • 운 좋게도 현대화의 이점 중 하나는 욘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었다. 라마파는 전통적으로 부자간에 세습되어왔는데 현대화의 여파로 몇몇 가족을 제외하고 능력주의가 도입되었다. 왜냐하면 학교에 다니기 위해 마을을 떠난 후계자가 너무나 많아서 세습주의가 점차 폐지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욘은 2013년에 기필코 라마파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은 현대 세계가 충족시킬 수 없는 그의 욕망 중 하나였다.
  • 프란스는 예의상 ‘시프리가 이게게렉을 주관하지 않은 이유’ 대신 ‘이게게렉이 성사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공손함을 가장 중시하는 라말레라 사회에서는 상호 간에 최면을 살려주기 위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게 필수적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노골적으로 지적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너무나 중요하므로, 예의 바른 인도네시아와 라말레라 사람들은 민감한 주제를 논할 대마다 수동태 문장을 구사한다.
  • 시프리가 분통을 터뜨린 이면에는 우존의 중요성이 최근 서서히 감소해왔다는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과거에 영적인 지도자로 추앙받았던 그들이 2014년에는 일부 라말레라 사람들에게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한때 누렸던 이익은 이제 불이익으로 바뀌어버렸다. 즉 과거에는 가파른 절벽 꼭대기에 있는 집이 침입자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었지만 오늘날에는 주민들로부터 그들을 격리시키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극단적인 보수주의가 그들을 라말레라 사회의 정점에 서게 해주었지만 오늘날에는 다른 가문들이 향유하는 혁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그들이 챙기는 물질적 이익이라곤 고래의 머리에서 가외로 얻는 고기밖에 없었는데, 최근에는 그것마저도 일부 가문에 가로채이고 있다. 한마디로 ‘세상의 주인들’은 주인의 지위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
  • 시프리는 시종일관 (라말레라 청년들에게는 금시초문인) 으스스한 고대 설화를 인용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인상을 가득 풍겼다. (…) 그러나 프란스는 쿠파가 자신의 말에 콧방귀를 뀔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알고 있었다. 라말레라 사람들이 선외 모터를 포기하지도, (한때 그랬던 것처럼) 우존을 공경하지도 않을 것임을. 세상이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했다는 것을.
  • 솔직히 말해 그는 인사치레로 ‘레월레바에 갔던 일은 잘됐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만 대답했을 뿐이었다. 상당수의 젊은 고래잡이는 우존이 주관하는 의식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프란스는 시프리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 그는 ‘라말레라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과, ‘설사 옛 방식을 선호하더라도 대다수 가문 사람들의 소망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신중하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다면 현대 세계에 합류하면서도 문화를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 만약 욘이 세바스티아누스에게 ‘외팔이로 사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면 ‘한 팔은 뭔가를 죽일 힘을 잃었지만 다른 팔은 뭔가를 사랑할 기회를 얻었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맞다, 그는 바다에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라말레라에서 가장 존경받던 1인’에서 ‘가장 측은한 사람’으로 추락한 것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성장한 손녀가 할아버지의 앙상한 손–젖먹이 시절에 고이 안아주었고, 걸음마를 배울 때 균형을 잡아주었고, 라말레라 앞바다에서 뛰노는 만타가오리를 가리켰던 손–을 기억했을 때, 모든 고통과 시름이 이슬처럼 사라졌다.
  • 누덱 가문은 대대로 선장의 지위를 세습해왔으므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이는 미래의 작살잡이들이 화이트칼라로 전환될 것임을 의미했다. 그 결과 오늘날 누덱 가문이 보유한 테나 중 두 척이 폐기 처분되었고, 요고와 또 한 명의 고래잡이가 (하리오나 가문 소유의) 볼리사팡에 승선하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하리오나 가문은 여전히 재정 상태가 열악하여 자식들을 해외로 유학 보낼 수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약 25개 가족이 라말레라에 머물며 가문 소유의 테나에 승선하고 있다.
  • 운이 나빠 허탕을 친 가문일지라도 조상님들의 방식 덕택에 빈털터리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운이 좋아 우마를 배정받은 라말레라 사람들은 운 없는 친척, 이웃, 친구들에게 다양한 명목–대부분의 경우 베파나bĕfãnã(선물)라는 명목7–으로 자신의 몫을 나눠주었다. 그들이 베파나를 제공한 근거는 각양각색–지난번에 받은 베파나에 대한 보답, 친척·이웃·친구들 간의 유대 관계 강화, 박애 정신–이었지만, 궁극적으로 ‘라말레라 부족의 모든 구성원은 개인의 행운을 부족과 공유해야 한다’는 조상님들의 정신을 구현했다.
  • 인류학자들은 ‘고래 사냥의 불확실성(잡히는 시기와 양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을 만회하기 위해 베파나가 진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이타성은 라말레라 부족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베파나는 ‘잉여량 재분배redistributing surpluses’라는 실용적 목적에 부합한다. ‘선물 주기’는 단순한 미덕을 넘어 재분배의 수단이며, 궁극적으로 호혜적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든 수렵채집인은 일종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므로, 협동과 공유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수렵채집사회가 산업사회보다 평등적이고 관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